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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글쓰기에 임하는 자세에 있어서 '창작자'가 아닌 '편집자'가 되길 권하고 싶다. 물론 윤리적인 편집자다.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글쓰기의 고통은 의외로 과욕에서 비롯된다. 처음부터 자신이 모든 걸 다 만들어내겠다니, 그 얼마나 무모한 욕심인가. 윤리적이고 겸허한 편집자의 자세를 갖게 되면 당연히 많이 읽고 생각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강준만 <글쓰기의 즐거움> 6쪽)

언론학자 강준만의 말이다. 이는 마치 자신의 글쓰기 방법론에 대한 설명(또는 해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아시다시피 강준만만큼 남의 글을 많이 인용하는 필자도 드물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본인이 직접 쓴 본문보다 따옴표로 묶인 인용문이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할 때도 있다. 이러한 '강중만식 글쓰기'는 찬사 못지않게 냉소도 많이 받는다. 방대한 자료 조사에 대해 학자로서의 성실성을 높이 사는 사람도 있고, 남이 쓴 글을 잔뜩 가져다가 이리저리 짜집기했을 뿐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의 평가가 다소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신문 쪼가리'에 실린 글마저 인용의 형태로 본분에 집어넣는 것은 그에게 그만한 문장조차 스스로 만들어 내지 못할 정도로 필력이 없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인용 없이도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는 필자다.

그런 그가 왜 지금과 같은 글쓰기 방식을 택했을까?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답은 의외로 싱거울 수 있다. 그렇다. 그냥 좋은 것이다! 그에게 글 쓰는 즐거움이란 자신의 문장력을 뽑내는 데 있는 것 같지는 않다(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그보다는 자료를 수집해서 자료들이 스스로 말하도록 적절히 배치하는 데에서 더 큰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따라서 "창작자가 아닌 편집자"가 되라는 그의 말 속에는 자신의 편집자적 성향을 이해 좀 해달라는 뜻도 포함된 것이다. 나는 그를 이해한다. 이해할 뿐 아니라, 그의 말은 글쓰기 초짜들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초짜인 당신에게 "우선 '창작자'가 아니라 '편집자'가 되길" 권한다. 당신은 아직 '창작'을 운운할 단계가 못 된다. 이미 있는 자료를 가지고 '편집'하는 법부터 익혀야 한다.

나는 당신이 인용술을 익히길 바란다. 원고지 10매 분량의 칼럼 하나를 쓴다고 생각해 보자.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생각으로만 채우지 마라. 반드시 글 한편에 최소한 인용문 하나를 집어넣도록 하라. 크게 세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그래야 독서를 한다! 당신은 아직 독서량이 부족하다. 인용문 찾기로 독서에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다. 목적 없는 '시간 죽이기' 독서는 이제 좀 줄이자. 당신은 오늘부터 되도록 '목적 있는' 독서를 해야 한다. 둘째, 그래야 글이 덜 지루하다! 웬만한 필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자기 문장만 가지고 독자의 눈길을 내내 붙들고 있기 힘들다. 이럴때 적절한 인용문을 제시하면 독자는 지루함도 덜고 내용도 더 입체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섯째, 그래야 내가 써야 할 분량이 줄어든다! 다섯 단락짜리 칼럼이라고 생각해 보라. 인용문으로 한 단락을 슬쩍 떄워 버리면 당신은 네 단락만 쓰면 된다.

나도 인용술을 이용해 글을 쓰고 있다. 글 한 꼭지를 쓸 때 최소한 두세 개의인용문이 준비되어야 비로소 글을 쓴다. 이런 인용문들은 평소의 독서를 통해 확보한다. 나는 머릿속에 몇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독서를 한다. '책 읽기', '글쓰기', '아이디어'. 이렇게 세 개의 키워드는 항상 내 머릿속에 박혀 있다. 무슨 책을 읽더라도(또는 텔레비젼을 보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더라도) 나는 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인용할 부분을 찾는다. 그러면 꼭 관련 서적에서만 인용문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된다. 오히려 그다지 관련 없어 보이는 책을 읽다가 내게 꼭 필요한 인용문을 찾기도 한다. 그리고 이처럼 엉뚱한 책에서 찾은 인용문이 더 재미있을때가 많다. 예컨데 '글쓰기'에 관해 쓰는데 글쓰기 관련 서적에서 찾은 인용문은 재미가 조금 덜하다. 글쓰기와 무관한 여행기라든가 요리책 또는 역사책에서 찾아낸 내용을 인용하면 훨씬 더 신선한 글이 된다.

저 마당에 있는 나무도 그렇거든요. 여기서 수십 년 살았지만 정원사를 불러서 손 대고 하는 걸 일체 안 했지요. 그러다 작년에 너무 험해서 한 번 잘랐습니다. 어저께 내 친구가 한 사람 왔어요. 그 사람은 시골에 짐을 가지고 있는데,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습니다. 자기는 가지를 많이 자르는 게 마음 아프대요. 그런데 자르고 나서 바람이 잘 통하면 나무가 좋아하는 것을 자기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나무가 무작정 가지가 퍼지다보면, 곤충이나 해충도 많이 끼고, 또 썩은 가지가 생기면 박테리아가 들어가고, 이런 걸 나무가 통제 못하는데 그것을 사람이 해주면 나무가 좋아하는 걸 자기가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친구도 은퇴하고 촌에서 사니까 많은 걸 배우게 된다고 생각했지요. (김우창, 문광훈 <세 개의 동그라미> 29쪽)

인문학자 김우창의 말이다. 나는 이부분을 <세 개의 동그라미>라는 책에서 읽었다. 이 책은 김우창과 문광훈, 두 학자의 대담집이다. 요컨대 인문학 서적이다. '글쓰기'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책이다(그렇다고 아주 없지는 않다). 어쨌든 이 책을 글쓰기와 연관해서 읽은 것은 아니다. 그냥 읽고 싶어서 읽었다. 그런데 몇 페이지 읽지 않아서 이 구절이 딱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있는 '글쓰기'라는 키워드가 이 부분을 빨리 메모하라고 지시했다. 사실 이 대목은 맥락상 글쓰기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얘기다. 말 그대로 그의 집 마당에 있는 나무를 보다가 친구 얘기를 한 것이다. 그런데 '글쓰기'라는 키워드를 갖고 있는 내겐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나무'의 자리에 '문장'을 갖다 놓아 보라. 어떤가? 간결한 문장 쓰기에 관한 그럴듯한 비유가 아닌가!

아마도 이 책을 읽은 사람 중에서 저 에피소드에 주목한 사람은 그이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글쓰기'와 접목해서 생각해 본 사람은 아마도 나뿐이지 않을까 싶다. 나도 '글쓰기'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냥 읽고 지나쳤을 것이다. 이처럼 키워드를 갖고 독서를 하면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부분에도 눈길이 가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발견한 부분이야말로 인용문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나만 할 수 있는 인용이 많을수록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당신도 이제부터 당신만의 키워드를 가지고 독서를 하라. 그렇게 인용할 글이 어느 정도 모이면 그중에서 또 서로 관련 있는 것들을 두세 개씩 묶어 순서별로 배치해 보라. 이 정도만 사전 준비가 되어 있어도 글쓰기에 대한 갑갑증은 훨씬 줄어들게 된다. 적어도 마른 행주를 쥐어짜는 기분은 아닐 것이다.

- 배상문 <그러니까 당신도 써라> 136쪽

인용문에 대한 오해 또는 편견을 다시 생각해 본다. 인용이 많은 책이 좋은 책인가? 이 의문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의 편협한 생각을 다시 돌아보다.